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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확장 :: 파워N은 별 게 다 궁금해

흥미돋 #2 역사학자들이 전설 속 문명을 찾는 걸 그만두지 않는 이유 -확장 2편

by Beer B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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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들이 전설 속 문명을 찾는 걸 그만 두지 않는 이유 2탄 ::

처음에 이 글을 우연히 발견하고 어머어머 너무 재밌다 꺄르르 꺄르르 하면서

글을 적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게 2탄까지 이어질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시작했으니 끝은 맺어야겠고 나름 재미도 있으니 이제 2탄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제목은 인터넷에 떠도는 글의 제목을 따왔는데,

글이 2편으로 나눠지다보니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로 인한 혼란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전설 속에서만 나오는 이야기라고 치부했던 것들(문명, 도시, 유물, 유적 등)이 실제로 자꾸 발견되니까

고고학자 역사학자들이 계속 연구하고 계속 팔 수 밖에 없다 덕후의 심장을 울린다 이거에요..

 

번호는 이어서 매김

 

#6 화산재에 묻혀있던 고대로마제국의 폼페이가 실제로 발굴

폼페이 유적 전반부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폼페이(Pompeii)가 있다. 

본디 폼페이는 로마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도시국가였지만,

기원전 80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로마의 문화 양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폴리만의 남쪽에 있어 날씨가 따뜻했던 폼페이는 당시 로마 상류층의 휴양도시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폼페이에서 멀지 않은, 약 10km 떨어진 곳에 베수비오 화산(Mt. Vesuvius)이 있었는데, 

79년 8월 24일*에 화산폭발이 일어나면서 약 3m의 화산재로 뒤덮여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역사속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폼페이는 1592년 이탈리아 수로건설을 목적으로 땅을 파다가 발견되어 현재까지도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로마의 유물과 유적들이 잘 보존된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가치가 뛰어나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굴 되고 있다고 한다. 

*폼페이를 사라지게 한 베수비오 화산 분출의 날짜, 8월 24일은 이를 목격한 플리니우스 2세가 그의 친구였던 로마의 의원이자 역사가였던 타키투스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유래했는데,  당시의 목탄으로 남겨진 기록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 목탄의 연대 측정법을 통해 이 글씨가 10월 17일에 쓰였다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 기록 이후 일주일 정도 후인 10월 24일이 최후의 날일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7 전설로만 존재했던 이집트의 "황금도시" 3400년 만에 발굴

이집트 남부 룩소르 서안에서 발굴한 3400년 전 도시 유적지의 전경

이 황금도시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첫번째 왕조인 18왕조의 9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기원전 1386~1349재위) 때 건립되어, 그의 아들인 아멘호테프 4새는 물론 12대 파라오인 투탕카맨 (기원전 1334~1325재위) 재위시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18대 왕조 말기에 사용했던 지그재그 형태의 진흙 벽돌담, 아멘호테프 3세의 왕실 직인이 찍힌 물건, 그의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 다양한 발견 물품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이 도시의 유지시기를 추측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굴된 이집트 고대도시 유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 곳은 룩소르 유적지 인근 모래속에 고스란히 묻혀 사라졌다가 3400백년 만에 이집트의 저명한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Zahi Hawass)가 이끈 발굴팀에 의해 발굴 되어, 2021년 4월 8일에 발표되었다. 

 

#8 전설속의 항구도시, 헤라클레이온이 실제로 수중에서 발굴

바다속에서 발견된 헤라클레이온의 유물
바다속에서 건져올려지는 헤라클레이온의 흔적

기원전 7세기 경에 건설된 헤라클레이온은 지중해의 여러 나라와 무역을 하며 큰 번영을 누린 항구도시였다. 

그런 헤라클레이온은 어느 순간 역사 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남긴 저술의 일부의 기록으로만 남아 사람들에게 신화 속 도시로만 여겨졌다.

 

지난 2000년, 전설로만 전해지던 헤라클레이온의 존재가 프랑스 해저 고고학 연구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다. 

당시 프랑스 고고학 연구팀은 이집트 북부의 아부 퀴르만 해협에서 18세기에 가라앉은 프랑스 전함을 찾던 중 우연히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농업과 다산의 신 '하피'의 화강암 조각을 발견하게 되면서, 전설속의 고대도시 헤라클레이온이 수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후 고고학자 프랑크 고디오가 이끄는 발굴단은 대운하를 갖춘 도시와 신전, 수많은 유물을 바닷속에서 건져냈다. 

 

그렇다면 헤라클레이온은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해저에 묻혀있던 도시를 재구성하고, 주변 지반을 탐사하면서 원인이 밝혀졌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반복되면서, 헤라클레이온이 있던 지역의 해수면이 올라오고, 지반은 낮아지는 현상이 반복되다가 1200~1300년 전 (8세기경), 도시를 둘러싼 땅이 해저로 가라앉게 되며,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9 트로이 포로들에 의해 건설되었다던 전설속의 도시 테네아를 발굴

테네아 유적의 도시 인프라. 출처:Greek culture ministry

테네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3200년 전, 기원전 1260년~1180년에 걸쳐 벌어진 트로이 전쟁에서 아가멤논 왕(1탄의 황금가면 주인공)에게 패한 뒤 도망친 트로이 생존자들이 건설한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테네아는 수세기에 걸쳐 번창했었고, 4세기경 로마제국이 쇠락할 때쯤 함께 피해를 입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테네아의 존재와 위치는 신화적인 부분으로 남아있었다. 테네아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고, 그저 기록으로만 후대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테네아가 세워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인 트로이의 전쟁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전설로만 남았었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 대한 실제기록은 어떤 역사서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단지 호메로스의 책 '일리아드'에서만 전해져왔다. 호메로스 이 분 또나오셔.. 기록왕이시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목마'를 포함하는 사람들의 자극하는 여러 요소 덕분에 아직까지 회자됨은 물론, 책과 영화로 많이 제작되었다. 

이런 유명세와는 달리 학계에서는 실제 사건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렇게 큰 트로이목마를 조사도 없이 성문 안으로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실제로는 트로이 목마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트로이 전쟁은 1871년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아의 발굴에 성공하면서 실제 있었던 전쟁임이 밝혀졌다. 이제보니 돈 많은 신화/전설 덕후 슐리만..

 

고고학자 엘레나 코르카가 이끄는 발굴팀이 그리스 남부의 칠모디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고대도시 테네아를 발견함으로써 테네아의 존재가 증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테네아의 보석류, 도자기, 도시인프라 등 여러 유물도 발견하였고, 이 유물들이 기원전 4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유물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유물을 통해 테네아가 북쪽의 고린도와 남쪽의 아르고스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며 번성했다는 추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0 크메르인들의 전설로 알려졌던 앙코르와트가 정글속에서 발굴

앙코르와트의 전경

앙코르와트Angkor Wat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주의 앙코르에 위치한 사원으로, 12세기 초에 크메르 제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50년 재위)에 의해 옛 크메르제국의 사원으로서 지어졌다.

앙코르와트의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 나가라에서 파생된 도읍이라는 의미의 노코르(Nokor)의 방언이고,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을 뜻해 '사원의 도읍'이라는 뜻이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은지 얼마되지 않아 공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앙코르와트의 일부 부분에는 작업이 미완으로 남아있다. 

1177년, 크메르제국은 참파 왕국에게 침략당해 국력이 휘청일 정도의 큰 피해를 입게 되었으나, 

자야바르만 7세가 제국을 회복하고 앙코를와트 북쪽의 앙코르 톰으로 수도를 옮기고, 새로운 중심사원인 바이욘 사원을 건설하면서 앙코르와트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크메르 제국은 끝없이 쇠락하여, 인근의 태국, 베트남 등 다른 국가에 의해 공격당하는 약소국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앙코르와트 역시 점차 잊혀지게 되었다. 

앙코르 와트는 16세기 이후 앙코르와트를 방문했던 여러 기록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버려진 사원은 아니었는데, 

앙코르와트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는데에는 1860년 경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무오의 탐험록에 의해서였다. 

 

앙리무오의 탐험록은 프랑스 정부의 큰 관심을 끌어, 결국 프랑스는 캄보디아 지역을 1863년 8월 11일에 보호령으로 삼고, 유적 폐허들의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해 인근의 태국을 공격해 캄보디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하게 했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는 1351년 이래 태국에게 빼앗겼던 북서부 영토를 태국에게서 되찾아올 수 있었다. 

캄보디아는 1953년 11월 9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독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앙코르와트를 관리하고 있다. 

 

 

#11 (마무리) 과연 사하라의 눈은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일까?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 국가 모리타니에 있는 사하라의 눈

잃어버린 섬 '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책에 기술 된, 대서양의 동쪽에 존재했다고 하는 전설의 섬으로

초강대국 아틀란티스 제국이 있었다고 한다. 허나 영화를 누렸던 그 제국은 하루밤 사이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지금까지 많은 조사 및 연구가 진행됐었지만, 아틀란티스의 실제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존의 아틀란티스의 장소로 추정되었던 곳은 에게해 산토리니섬, 북해 도거랜드, 모로코 수스마사 등이 있었는데

2018년, Youtube의 'Bright Insight'에서는 아프리카 북서부 모리타니의 '사하라의 눈'이 아틀란티스의 터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데에는 흥미로운 이유들이 존재하는데, 

  1. 아틀란티스와 리차트 구조(Richat Structure)의 크기가 일치한다는 점
    리차트 구조(사하라의 눈 정식명칭)는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을 따라 모리타니 중앙부에 있는 고리 모양 구조로 원형 고조지형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플라톤이 쓴 아틀란티스의 크기가 22~24km의 직경으로 일치한다고 한다.
  2. 리차트 구조 주변 환경 조건이 아틀란티스의 전설과 일치한다는 점
    플라톤의 기록에 의하면, 아틀란티스가 북쪽에 여러 아름다운 산들과 접하고 있다고 하는데, 리차트 구조도 과거 북쪽에 산이 있으며, 사하라 사막이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산이었으므로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3.  아틀란티스의 멸망시기와 영거 드라이어스기(Younger Dryas)가 일치한다는 점
    영거 드라이어스기는 1만 2900년전부터 1만 1500년전에 북반구의 고위도에서 마지막 빙하기 끝나고 온난화가 시작한 마지막 아빙기 이후 다시 일시적으로 갑자기 추운 빙하기 상태가 돌아온 시기를 말한다. 이 때 운석충돌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곳 사하라의 눈, 즉 리차트 구조는 현재 내전과 치안의 이슈로 공식적으로 조사할 수 없는 땅이라고 한다. 

만약 공식적으로 조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 흥미로운 가설이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드디어 나의 호기심도 끝이났다. 

마지막은 그냥 인터넷 떠도는 글을 그대로 두면서 끝맺으려고 했는데

아틀란티스의 새로운 후보썰(?)까지도 너무나 궁금했다.

심지어 지금은 조사도 못하는 지역이래 😳😳 세상에나 마상에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궁금함에 인터넷 글의 배경을 찾아 겉핥기 수준으로 정리해 보았다 

 

다른 사람도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당 아님말구🙄

또 궁금한게 생기면 끄적여봐야지! 그럼 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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